대학원을 갔어야 했을까

2010년 1학기에 아직 학부생일 때 유환조 교수님 데이터마이닝 수업을 듣고 정말 재밌다고 느꼈고, 이게 정말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쪽으로 진로를 잡아보기로 했었다. 아직 인더스트리로 갈지 아카데미아로 갈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크게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1. 데이터 마이닝/머신 러닝쪽 대학원을 진학해서 전문연구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다.
  2. 데이터마이닝을 하는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에 갈 지 말 지 결정한다.

결국 나는 2번을 택했는데, 다음과 같은 판단 근거가 있었다.

  • 연구실에서 한 학기동안 연구참여를 하면서 모 기업 프로젝트를 수행했었는데, 결국 대학원 생활이라는 것이 내 공부이지만 그 공부 중에 많은 부분이 기업 과제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회사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공부를 하는데 회사는 돈을 더 많이 준다. 부모님께서 돈 받아쓰는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 서울에서 1여년간 생활하다 내려오니까 매일매일 포항 생활이 너무 지겨웠다. 학교에 내려가면 다시 학교 사람들하고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랑 친했던 사람들은 다 졸업하고 학교에 없거나 대학원에 가서 나랑 놀아줄 시간이 없고 모임에 나가면 나는 너무 늙은이였다. (24살이 늙은이였다고 하면 좀 그렇지만 그땐 그랬음..)
  • 이 분야와 관련되어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데이터 마이닝 – 지금은 머신러닝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지만 – 분야에 대한 내 전문성을 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6년이 지난 지금 이 근거들은 그다지 맞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내가 데이터 마이닝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회사에서 그 일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관심은 있지만 실제로 수업 한번 듣고 연구참여 한번 해본 데이터마이닝 분야의 일보다, 인턴 생활을 통해 잠시나마 경험이 있었던 웹 개발 작업을 더 맡기고 싶어했다. 웹 개발은 내가 해봤고 또 확실히 할 수 있음이 예측가능한 일이지만, 데이터마이닝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의욕만 있고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회사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 회사에서는 리서치를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사실 그 가치가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른다. 리서치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뻔하지만 확실히 돈이 되는 일 – 솔루션 개발 – 에 더 집중하고 싶어했다. 요즘은 어느 정도 능력이 있고 관심이 있다면 산업기능요원들에게도 딥 러닝같은 선행적인 연구를 시켜주는 D모 회사같은 곳이 있지만, 내가 산업기능요원을 구할 때만 해도 TO가 있는 회사 중에 그런 회사가 많지 않았.. 아니 거의 없었다.
  • 그렇게 흘러흘러 오다가 그나마 지금은 운이 좋아서 머신 러닝 하시는 분들하고 같이 일할 기회가 생겨서 그나마 데이터 엔지니어링쪽 경험이라도 어느정도 쌓을 수 있었는데, 아직도 나를 머신러닝 엔지니어로 포지셔닝 하기에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관련 이론 지식 등이 너무 부족하다.
  • 회사에서 시켜주지 않으면 개인 시간이라도 쪼개어서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길렀어야 했는데, 그러기에 나는 너무 게으른 사람이었다. 몇 번 시도는 해 봤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머신 러닝쪽 일을 풀타임으로 해 왔던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 최소한 산업기능요원이었던 3년간은, 대학원에 비해 돈을 그렇게 많이 번 것도 아니었다.
  • 내가 일을 시작했던 2012년부터 2017년 사이에 계속해서 데이터 분석과 빅데이터, 머신 러닝, 딥러닝 등의 큰 트렌드가 지나가고 있는데 나는 그 중 하나에도 제대로 탑승하지 못했고, 업계의 발전에 비해 내 지식이 늘어나는 속도가 느려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들이 점점 outdated되고 있는 상황에 불안함을 느낀다.

그래도 이 선택에 좋은 점들도 있었다.

  •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집단인지 – 사실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 어렴풋하게나마 배우게 되었다.
  •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내 몸 하나쯤은 먹여살릴 수 있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
  • 병특을 하던 도중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결정적으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 내가 원했던 것은 조금 다른 방향이었지만 6년차 서버 개발자라는 경력을 쌓게 되었고 이걸 레버리지로 다른 시도들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내가 데이터 마이닝을 하기에 좋은 패스를 택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이 선택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도 만족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씩 “6년 전에 대학원을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뭐 이렇게 계속 뒤돌아보면서 사는게 인생이겠거니.

대학원을 갔어야 했을까”에 대한 3개의 생각

  1. taso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셨네요 🙂
    병특시작할 때는 이런 고민을 안했었지만, 요즘 졸업을 앞두고 비슷한 생각을 많이하고 있어요.
    돈을 벌고 싶은 탓에, 대학원을 가더라도 나중에 좀더 돈 번 다음에 가야겠다 생각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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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yamx2 글쓴이

      하지만 돈을 벌게 되면 계속 벌어야 하죠 ㅎㅎ 회사 다니다가 학교로 돌아가는 선택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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