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7년 6월월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가 난 스물 두살이었고 내 또래였던 주인공의 행동에 꽤나 충격을 많이 받았었다. 아마 대부분의 스물 두 살 남성들은, 뿌리깊은 여성혐오자이지 않은 이상 그 소설을 읽으면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소설을 첨 읽어보면 주인공이 완전 미친 사람 같고 주변에도 그렇게 말하고 다녔었는데, 다들 별 대꾸를 안해서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나보다 했는데 친한 친구가 이야기해줬던 한 마디가 완전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해줬다. “왜 주인공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이해가 안 가는 행동과 말을 했을 때, 그 사람을 바보 또라이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건 참 쉽다. 인간의 정신에 본능적으로 내재되어있는 방어기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에 대해 헤아리기는 정말 어렵다. 원래 인간은 모든 문제를 본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게 익숙한 생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살다 보면 누구나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 의해 타자화되는 경험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82년생 김지영>은 별로 어려운 소설이 아니다. 내용도 짧고 문체도 간단하며 술술 읽힌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일 것이다. 이 소설이 화제가 되자 어느 정치단체가 운영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비슷한 이름의 창작소설이 – 하지만 대조적으로 내용은 판타지에 가까운, 나는 그 더러운 글 제목을 다시 입에 올리기조차 싫을 정도로 그것을 혐오하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이름이 대표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증언들이 계속 올라옴에도 불구하고 왜 누군가는 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을까. 그 목소리를 지워버리려고 할까.

한국 사회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 하나가 누군가의 고통을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지워버리려는 행위이다. 여자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왜 장애인들의 고통과, 현역병들의 고충과,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뭐 그런 것들을 들이밀며 “이런 사람도 있으니까 참아” 라고 이야기하는가? 이 논리대로라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만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하나둘셋 뿅 하면 짜잔 모두가 평등해졌습니다! 하는 유토피아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적어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인권은 별로 침해받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왜냐하면 자기의, 본인 가족의, 친구의 일이면 저렇게 태연하게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눈에 보이는 명확한 차별 앞에서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 외에는 모두 망설임일 뿐이다. 사회적인 인식이… 구성원의 공감대가… 급격한 변화에 대한 반감이… 그것은 높은 확률로 당신이 걱정해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당신이 문제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있고, 그 문제에 대해 별로 불편하지 않고, 지금 이 정도 상태여도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변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는 말은 실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껏해야 본인의 알량한 정의감에 위안 정도나 될까.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싶으신 남성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면, 내 주변의 여성혐오부터 하나씩 없애나가는데 동참해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대단한 사람인 양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예전에는 여성혐오적인 행동과 언사를 굉장히 많이 했고, 지금은 그게 부끄러운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0년간 내재된 사고방식이 종종 튀어나와서 나를 당황하게 한다. 트위터에도 썼지만, 한국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 안에 있는, 내 주변에 있는 여성혐오와 싸워야 하는 일이다. 그 싸움에 같이 동참해주시면 좋겠다.